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한 지 개봉 6일 만에 벌써 200백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습니다.

김한민 감독의 야심 찬 '이순신 장군 3 대첩(한산, 명량, 노량)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입니다.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는 현재 영화 '서울의 봄'과 함께 지금 우리의 암울한 사회 현상에 대한 유일한 위로와 치유의 역할까지 선사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흥행 돌풍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큽니다.

 

영화 노량을 관람하기 이전에 긴박했던 당시의 실제 역사적 상황을 미리 이해한다면, 영화에 대한 흥미와 감동은 더욱 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량해전 당시의 전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과연 노량해전 직전의 당시 상황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노량 미리 보기 프리뷰)

 

정유재란 발발과 명량대첩

 

  • 1597년 8월, 정전 회담이 결렬되자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 정유재란 개전 초기 판도를 결정짓는 칠천량해전에서 그때까지 무적을 자랑하던 조선 수군은 모함을 받고 투옥된 이순신 후임으로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무능함으로 인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궤멸된다.
  • 다시 삼도수군통제로 복권된 이순신 장군이 남은 12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명량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함으로써 또다시 제해권을 회복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 정류재란 발발과 칠천량해전에서의 대패 직후, 明국에서는 조선으로 수군을 포함한 구원 병력의 증파를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 남원, 진주, 전주 지역을 파죽지세로 도륙하며 북상하던 왜군은 직산전투에서 조명 연합군의 강한 저항에 북진이 저지되고, 명량에서의 대패 소식까지 전해지며, 퇴로 및 보급 차단의 우려와 급격히 저하된 사기 문제로 일제히 남쪽으로 퇴각한다.
  • 전세가 뒤바뀌자 왜군은 각각 왜성을 쌓아 방어적인 장기 농성에 들어간다.

 

명 수군의 파병과 사로병진 총공세 작전

 

  • 정유재란 발발과 칠천량에서 명나라 해상 방어 역할까지 했던 조선 수군이 궤멸되고, 남원성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의 패전은 명나라 조정에 심각한 위기감을 조성했다.
  •  왜군이 육상으로는 요동 지역으로, 해상으로는 서해를 통해 대륙 남경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증폭은 결국 조선으로의 추가 파병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 이로써 진린 도독이 (부도독, 등자룡) 이끄는 명 수군이 조선 수군과 함께 조명 연합함대를 결성하게 된다.
  • 당시 명군의 육군 사령관은 유정, 수군은 진린이었으며, 명 수군은 주로 절강, 상해, 복건, 광동에서 차출된 남방 출신의 수병들이었다.
  • 전세가 역전되자 조명 연합군은 육로 3로, 수로 1로를 합친 4로를 통해 3곳으로 흩어져 있던 왜성 본거지들을 동시에 공격하는 이른바 '사로병진 총공세 작전'을 펼친다.
  • 사로병진 작전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왜군들을 왜성 안에 가두어놓고 말려 죽이는 봉쇄작전으로 선회하게 된다.
  • 그중에서 순천 예교성에 농성 중인 고니시는 이순신과 진린의 조명 연합함대로 인해 바닷길까지 막혀버려 아사 직전의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육로와 해상에서 동시에 대규모 공세를 펼친 순천 왜성 예교성 공격이 실패한 주된 원인은 고니시의 뇌물을 처먹은 유정의 소극적인 대처에 있었다.

이로 인해 육군의 조력을 믿고 깊숙이 진격해 들어간 명나라 수군이 썰물로 갯벌에 고립된 채 고니시 군의 반격을 받아 약 2만여 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에 진린은 유정 진영으로 찾아가 군기를 찢어버리는 등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사로병진 대신 "병력을 집결하여 각 왜성들을 각개 격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냐?"는 주장도 있으나, 지난 울산성 공세 실패가 다른 진영의 왜군 구원병이 후미를 치러 옴으로써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로병진을 택했던 것이다.

즉, 왜군이 서로 구원병들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동시에 왜성들을 공격하고 봉쇄했던 것이다.

 

노량해전을-앞두고-작전-회의를-주재하는-이순신-장군-영화-노량-죽음의_바다의-한-장면
작전 회의를 주재하는 이순신 장군. '노량 - 죽음의 바다'의 한 장면

 

도요토미의 사망과 일본의 상황

 

이러한 형국에 일본 열도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7년 전쟁의 종막이 긴박하게 닥쳐오게 되었다.

 

  • 도요토미의 철군령에 따라 왜군들은 이제 살기 위해 자신들의 본국으로 회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문제는 도요토미 사후에 벌어질 권력 다툼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 또한 다이묘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 다이묘들은 각자 자신이 거느린 병력의 피해를 최소화한 상태로 돌아가야 본국에서 벌어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다이묘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 울산 왜성의 가토는 이미 토쿠가와에게 기울어진 상태였고, 노량해전 직전에 고니시와 시마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 측 진영으로 분류됨으로써 시마즈가 주변의 작은 왜성 장수들을 규합해 고니시를 구원하러 오게 된다. 본국에서 벌어지게 될 내전에 있어서 동맹 세력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인 선조에게 왜놈들이 다시 쳐들어 온다는 말은 엄청난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그런데 왜군들에게 있어 이순신 장군 역시 엄청난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만약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반대파 세력들과의 내전 중에 만약 이순신의 함대가 건재할 경우 언제든 자신들의 배후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니시와 시마즈는 병력을 유지한 채 안전하게 퇴각하는 것이 제1순위였지만, 이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포위망을 뚫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후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순신 함대와 필사적으로 싸워야만 했다. (결국 고니시는 그냥 내빼고 시마즈만 이용당한 결과가 됐지만)

 

이들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트라우마는 상상 이상이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교란하기 위해 "일본 열도를 직접 공격하러 출정하겠다"라는 식의 가짜 장계를 왜군들이 발견하도록 노출하는 교란책을 쓰기도 했으며, 대마도, 오사카, 교토 등에 항왜 등을 이용한 스파이 첩보 활동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 영주들은 정말로 이순신이 열도의 내전을 이용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당시 明軍의 입장,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생각

 

당시 명군의 입장은 명확했다.

조선에서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왜군을 협박, 회유하는 강화책을 통해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는 우리와 그들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명나라는 말기 현상이 뚜렷했다. 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요동에서 여진족을 제어할 힘이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군은 철군하는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고, 전쟁을 빨리 끝낸 뒤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노량해전에서 명 수군이 초기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굳이 명군의 입장이 아니라도,,

이제 왜놈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마당인데 굳이 퇴로를 막고 다 죽여버리려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처럼 아군의 피해도 상당하기 때문에 "終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노량-죽음의_바다-선상-백병전-장면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의 선상 백병전 장면. "이 다음에 우리 아그들이 우리가 죽도록 고생한 걸 알까?", "당연히 알겄쟤. 모르면 참말로 호로자식들이쟤" - 영화 '명량' 대사의 한 소절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그를 따르는 휘하 장수들, 그리고 조선 수군 병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 한 번 쳐들어 온 놈들은 반드시 또다시 침략해 온다.
  • 우리를 침공한 놈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야 한다.
  • 이 전투는 우리도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하지만, 한 놈의 적이라도 더 많이 죽여 없애야 하는 싸움이다.

 

물론 개개인의 모든 생각이 다 그러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수군도 인간이니까, 이미 우리가 이긴 전쟁이고, 그저 도망가기만 하려는 적의 길목까지 틀어막아 죽기 살기로 덤비게 하여 굳이 우리도 피해를 볼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휘하 장수들과 수군 병사들이 장군을 따라 이 싸움에 결연하게 임한 이유는 바로,,

이 결전이야말로
현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한
마지막 희생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수군은 노량해전에 임하기 이전에 이미 다음과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 전쟁, 굳이 죽음을 각오할 치열한 싸움을 굳이 할 필요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결연히 싸움에 임한다.
  • 왜냐하면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승리한 전투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며,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
  • 적은 숫자로 많은 수의 적을 맞아 백병전을 치르며 싸워야 한다.
  • 이제까지 싸워왔던 모든 전술은 의미가 없다. 
  • 명 수군의 적극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 그러나 적들에게 "우리를 침범한 대가는 혹독하다"라는 분명하게 각인시켜야 한다. 

 

結語

 

노량해전 당시 전력을 살펴보자면,, 왜군 500척 + @, 명군 300척, 조선군 60척이었습니다.

오히려 적보다 조명 연합함대의 함선이 훨씬 적었던 것이죠.

물론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감안한다면, 해상 전력을 단순한 숫자로 파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당시 상황은 절대적인 병력 열세로 인한 막대한 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노량해전 승리가 왜 위대하냐면,,

 

  • 훨씬 적은 수로 많은 수의 적을 가두어 놓고 섬멸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
  • 명나라 수군이 소극적일 때 단 60여 척의 함대로 500여 척의 적을 상대하고자 했던 결의
  • 적은 수로 적을 모두 섬멸하기 위해 노량의 좁은 길목을 차단하여 피아 간의 밀도를 높여 싸울 것을 각오함
  • 이는 그동안 거리를 유지하고 함대함 포격전으로 적을 궤멸시키던 조선 수군의 기존 전술을 포기한 위험한 작전임
  • 한 마디로 조선 수군은 살기 위해 절박하게 싸우는 적들보다 더욱 결연한 의지로 전투에 임했던 것임
  • 장군 휘하의 지휘관들도 병사들과 최일선에서 함께 치열하게 싸워 희생이 컸다.
  • 다 이긴 전쟁에서 끝까지 적을 섬멸하고자 했던 이러한 모습이 바로 참된 군인이자 리더로서 이순신 장군이 聖雄으로 존경받는 이유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바로 "내 나라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지킨다!"라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지금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세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현대의 국가 안보는 단지 독자적인 군사력(자주국방) 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문화, 과학기술, 올바른 역사관과 정의롭고 의로운 사회적 가치가 모두 총망라된 총력전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루속히 자주적인 전시작전권을 회복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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